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와 이유

해당 글은 위트레흐트대학교에서 유학중인분이 개인 블로그에 2018. 4월에 작성한 글을 옮겨온 글로 무단복제를 금합니다.  원본글 보기

우리는 어떤 계기로 해외 유학 또는 그 무엇을 마음먹게 되었을까요?

아마 제가 평소 떠올리는 생각, 내뱉는 말에 빅데이터 분석을 실시하게 된다면, ‘왜?’라는 글자가 상당량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365일, 하루 24시간 저를 졸졸 따라다니는 질문이 바로 ‘왜?’입니다. 참 피곤한 성격입니다. 전 스스로 던진 ‘왜?’라는 질문에 속시원한 답변을 내리지 못하면 매우 힘들어 합니다. 바로 저만의 강박증입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린 참으로 해야할 것이 많은 사회에 살고 있고, 스스로에 이런 저런 책임과 역할을 지우는 것에 익숙하지만 정작 ‘왜 나는 그래야 하는가?’라는 물음 한 번 솔직하게 되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어떤 물음이라 할 지라도 거창한 답변, 소위 ‘있어보이는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직장을 관두고 유학을, 워킹홀리데이를, 세계일주를 도전하겠다 마음을 먹고 동료가, 친구가, 가족이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도대체 얼마나 ‘있어보이는 답변’을 내놓아야 그들이 나의 결심에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해보신적, 없으신가요?

 

21살, 대학교 2학년을 다니던 저는 막연한 해외 생활을 동경하였습니다. 해외여행이라곤 한 번 가보지 못했던 제가, 교내 해외탐방 프로젝트에 당선되어 미국을 가게 되었고, LA, NY 등 소위 익숙한 장소가 아닌 ‘콜로라도’라는 낯선 장소를 무턱대로 팀원들과 떠났던 시간은 저로 하여금 ‘Why not?’ 이란 마인드를 갖게 해주었고, 현지 학생들과의 만남은 저의 꿈을 보다 구체화 시켜주었었지요. 해외 취업으로요.

 

미국땅 한 번 밟았다고 한국이 무척이나 좁아보이더군요. 그 당시 막연한 희망을 현실화 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은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저의 건방짐에, 남들 다 가는 호주 대신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는 캐나다를 가겠다 마음먹었고, 이런 저의 결심을 지도교수님에게 털어놓았습니다. 비장함 따윈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부모님의 거센 반박에 부딪혔던 저에겐 교수님의 동의가 한 줄기 희망이었으니까요.

 

교수님은 제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답변을 내놓으시더군요. 해외에서 취업을 하고 싶으면 유학을 떠나라고 말입니다. 제 전공은 에너지자원공학, 즉 광업입니다. 전공 관련하여 해외에서 취업을 하려면 아무래도 해외 학위가 있는게 국내 학위보다 보다 유리하다고 말씀하셨죠.

 

해외에서 공부하는 시간 자체가 저에겐 해외 생활이기에 1년간의 워킹홀리데이를 당장 떠나기 보단 한국에서 준비를 잘 하여 해외로 유학을 가는 것이 1석 2조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물론 시간도, 비용도, 노력도 몇 배는 더 드는 일이지만 훨씬 본질적인 도약이란 판단이 들었고, 그 때 부터 저에겐 해외대학 진학이 저의 또 다른 목표가 되어버렸습니다. 전혀 거창하지 않죠, 단지 전 저의 생활환경을 국내가 아닌 해외로 설정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엔 다 때가 있다는 말이 있듯, 저 당시의 결심은 길게 가지 않았습니다. 유학을 당장 접자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학부생 연구보조원으로 실험실에서 생활하며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다른 학교 학생들이 어떤 환경에서 노력하는지, 실험실 밖 사회는 어떤지 알게 되고, 저의 강점과 흥미가 무엇인지 조금씩 깨닫기 시작하면서, 학교 밖으로 나가고 싶었습니다.

 

당시 스물 둘, 셋이었는데 실험실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책을 보고 컴퓨터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보기 보단 밖으로 나가 뛰어다니며 에너지를 뿜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 지도교수님께 용기내어 말씀드렸더니, 제가 그런 결정을 할 것이라 미리 알고 계셨다며 저를 갑작스레 오스트리아에서 열리는 학회에 데려가셨습니다.

 

저에게 너무 과분한 결정이라 말씀드렸더니, 해외 학회에서 열심히 피땀흘려 만든 연구물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잘 지켜보길 바란다며, 꿈을 포기하지 말고 언젠가 다시 꼭 해외로 가겠다는 마음을 먹었으면 한다며 저를 되려 응원해주셨습니다. 이 때 저란 사람의 가능성을 스스로 일깨워 주셨던 교수님의 제자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5년 넘에 저를 지탱해온 또 다른 하나의 큰 힘이자, 제가 저의 어린시절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막상 실험실을 뛰쳐나와 남들보다 늦게 취업준비를 시작했고, 짱짱한 스펙을 갖추진 못했지만 저 스스로를 믿고 꾸준히 이력서를 적어내었습니다. 인적성 시험도 치고, 면접도 보며 나름 치열하게 지낸 것 같지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런 꿈도 목표도 없이 사무실에 앉아 일정한 날짜에 들어오는 월급만을 기다리는 삶을 위해 실험실을 뛰쳐나오진 않았을거란 생각이요.

 

뿐만 아니라 제가 가진 한계와 부족함을 뼈져리게 깨달았습니다. 제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선 영어는 물론 제2외국어 능력이 필수로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미 스페인어 연수를 목표로 잡았었죠. 네, 역시 마찬가지로 진학이 아닐 뿐 해외생활에 대한 꿈을 여전히 접지 못한 것입니다.

 

에콰도르행 비행기 티켓과 어학원 문제 등을 해결해 가며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던 도중에 모교에서 신입생들을 선발하는 업무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삶의 경험이 있다고 말하기엔 턱없이 어린 나이, 비전공자, 학사졸업 등 여러가지 장애요건이 있었기에 지금이 아니면 평생 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진 않을 것이란 믿음에 에콰도르 행을 잠시 접어 두게 됩니다.

 

한국에서 열심히 직장생활하며 경비를 벌고 나름의 경력을 쌓으며 준비를 하겠다는 마음에 업무 현장에 뛰어들게 됩니다. 학교를 홍보하고, 학생, 학부모와의 가장 최접점에 배치되어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며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곤 하였지만 결코 녹록치는 않았습니다.

 

불안정한 신분과 경제적인 요소 보다 저를 더욱 세차게 흔들었던 것은, 저의 주된 업무 분야를 정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는 내면에서 울리는 알람이었습니다. 어느 분야이건 홍보, 교육, 기획 등의 업무는 필요하지만 저의 주된 분야가 “대학입시”여야 하는가, “입학사정관”이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순환보직이 되지 않는 업무, 늘 똑같은 구성원, 전문직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전문성을 발휘하기엔 너무나 꼬여있는 현실의 규제, 사명감은 커녕 기계적인 업무에 좌절감과 이기심만 늘어가는 제 모습을 자주 보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제 나이 스물 다섯, 여섯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본디 직장생활이란 다 그런것이라 합니다만,

 

도전을 할 수 있는 힘과 열정이 아직까지 따뜻하게 저를 지탱하고 있는 이 시기에, 있는 자리에서 지금처럼 심각한 취업난에 감지덕지이니 참아내느냐 다른 길을 가느냐 하는 기로에서의 선택은 저의 몫이며,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제가 살아내는 삶입니다.

 

어느 분야에 가던 현실과 이상 사이의 거리가 멀고 지치는 것은 마찬가지일테지만, 마음을 붙이고 매진할 수 있는 곳은 다시 선택해야 한다는게 제 판단이었고, 제가 가진 추진력, 기획력, 표현력이 저의 본디 전공인 에너지 산업에서도 꼭 필요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어떤 사정에서, 어떤 이유에서건 저는 5년전 꿈을 다시 꾸고, 이젠 실현시키자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요. 오랜시간 돌아왔지만, 이젠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제가 사직을 마음먹고, 오랜기간 손도 대지 않았던 전공분야로 다시 뛰어 들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아마도 저에겐 그 지난 꿈이 너무나 소중해서였고, 여러 대안들을 찾아 보았지만 그 꿈만큼 제 삶에 확신을 준 것이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에겐 누구에게나 직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전 2018년 올해 9월 학기가 아니면 두 번 다시는 과감하지도, 무모하지도 못할 것이란 느낌을 강력하게 받았습니다. 겁이 많이 납니다.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지금 멍청한 행동을 하는건 아닐까, 철딱서니 없이 어렸을 적 패기를 잊지 못해 일만 저지르는건 아닐까 걱정을 시작한다면 밑도 끝도 없이 뱅글뱅글 제자리 걸음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학의 길이 지금보다 열 배는 더 힘들 수도 있을 것이고, 백 배는 더 불안할 수도 있을 것이며, 졸업 후 지금 이 글을 무슨 똥배짱으로 써나갔는지 미친 결정을 내렸다며 제 자신을 탓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저의 직감을 회피하고 각종 핑계거리나 양산하며 꼰대로 성장한 제 자신을 보게 될 때 전 정말 슬플 것이라는 겁니다.

 

제가 바라는 시니어로서의 삶은 “왕년에 내가 말이지,”, “나도 그럴 수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요즘 젊은 애들이 말이야,”가 아닙니다. 성공을 하던 실패를 하건, 지난 저의 도전에서 배운 점들을 토대로 후배들을 믿어주는 진정한 선배의 삶입니다.

 

지난 추석연휴에 퀘벡에서 만나 프랑스 가정식에 맥주를 함께 기울였던 여행자 언니가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마음의 소리를 꼭 들어야 해요. 그 누가 방해를 놓더라도 마음의 소리만 따라가면 되요.” 이웃을 시기하고 본인과의 끊임없는 비교 속에 반성은 못할 망정 타인을 비난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우리의 삶을 걱정하는 가족들도 있지요.

 

우리가 도전을 하겠다는 데에 대한 이유를 꼭 화려하게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나요? “한 번 해보려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즐겁게 하다 보면 나 하나 굶어 죽겠나?”라는 답변을 내놓으면 너무 무책임한가요? 우린 늘 목표를 세워놓고 행동으로 실천하지만 그 목표는 늘 바뀌고 삶은 예측할 수 없다고 그간 수 없는 경험을 통해 체득하였습니다.

 

에디슨의 꿈은 처음부터 에디슨이었을까요?

 

우리의 마음은 이미 답을 알고 있고, 우리가 내린 결정은 이미 오랜 삶에 축적된 데이터로 부터 나오는 것이지 어느 한 순간 하늘에서 뚝딱 내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유가 거창하다 나무라려는 것이 아닙니다. 행여, “단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인데, 뭐라 말하지? 샤넬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선 유학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해야 하나? NASA 수석연구원이 되기 위해서라고 해야 할까? 대학 교수가 되려면 꼭 필요하다라고 이야기 할까?”라는 마음을 먹고 계신 분들이 계실까 싶어 제 부족한 필력을 보태어 봅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뽀대다는 향후 진로 계획을 만들 시간에, 우리가 지금껏 살아온 삶에 어떤 순간이 지금의 이 결정을 만들어 주었는지에 대해 귀기울여야 합니다. 우리 몸 속에 있는 방어기재란 아주 영민하기에, 내가 감당할 수 없을 크기의 결정은 본능적으로 회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유를 당장 명쾌하게 한 줄로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살다보면 언젠가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요?

 

납득이 될 만큼 그럴싸한 이유를 만들어 내느라, 결정의 유효기간을 놓치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스스로를 믿고. Che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