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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원 없이 유학가기

해당 글은 드레스덴 공대에서 유학중인분이 개인 블로그(레일라블로그)에 2018. 7월에 작성한 글을 옮겨온 글로 무단복제를 금합니다.  원본글 보기

유학의 가장 첫 단계는 무엇일까?
아마 유학원에서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아닐까?
나 역시 처음부터 이 유학을 홀로 준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날 도와 줄 사람이 없어서 혼자 하게 되었을 뿐이었다.

 

나는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부모님이 빵빵하셔서 무조건적인 지원을 해주는 배경을 갖고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국 워홀을 할 때, 유학원을 통해서 갔었다. 뭔가 잘못돼서 삐끗하느니 까짓거 돈 20만원 투자해서 보험을 들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물론 그 때 어쩌면 유학원이 등 뒤에서 든든히 버텨주었기 때문에 덜 스트레스를 받았을 수도 있는거지만, 실질적으로 유학원으로 부터 받은 도움은 별로 없었다. 거의 마음 편하자고 돈 20만원을 쓴 셈이었던 것.

 

유학을 준비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돈 몇 십만원은 유학준비에 있어서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서류 준비하는데에만 들어가는 돈이 정말 어마어마하다. 그럼 돈이 문제가 아닌데, 나는 왜 유학원을 가지 않았던 것일까?
이 포스팅에서는 유학원 없이 독일 유학을 준비했던 시간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한다. 이 포스팅을 읽은 후 ‘나도 유학원 없이 유학 갈 수 있겠는데?’ 하는 자신감을 얻길 바란다.

유학원의 문을 두드리다

내가 독일 유학을 결심한 것은 한국에 오기 전이었다. 영국에서 영국워홀이 끝나면 뭘해야하지 하고 고민하다가 유학을 생각하고, 한참 서칭을 통해 정보를 모으고 난 후에, 진짜 지원을 하려고 보니 영어성적도 필요하고 서류 준비들도 필요한데 영국에서 그런 것들을 제 때 다 준비하기엔 너무 역부족일 것 같았다.

 

그래서 예정된 날짜보다 2개월정도 일찍 입국했다. 한국에 들어온 날이 11월 23일이었는데, 아래 문자에서 보이는 것처럼 들어온 지 2주도 채 되지 않아 독일 유학원에 연락을 했었다. (사실 그보다 더 일찍 할 수도 있었지만, 당장 아이엘츠 시험을 잡아놨기 때문에 처음 2주는 영어시험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네이버와 구글을 활용해서 정보를 모으고, 독일 유학 상담을 해주는 곳들의 목록을 뽑아서 전화를 쫙 돌렸었다. 그렇다. 나도 혼자 하는 것 보다는 남이 도와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 중 일부는 상담비를 받고, 서비스를 받기로 하면 나중에 상담비를 돌려주는 곳도 있었다. (상담비가 너무 비싸서 그냥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끊었던 것 같지만..) 그런데 미국, 영국, 캐나다와는 달리 독일 유학은 유학원에서 해주는 서비스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원장님과 통화를 했었는데, 가고싶은 과가 무엇인지, 영어 성적은 있는지, 독일어 성적은 있는지 등등을 얘기하다가 그 분께서 “그럼 우리가 딱히 도와줄게 없는 것 같은데요? 우리가 뭘 해줬으면 좋겠어요?” 하고 되물으셨다.

 

영어로 학교 홈페이지에 있는 모집요강을 읽고 이해할 수 있고, 자소서나 이력서 관련해서도 첨삭서비스 필요 없다고 하면서 도와달라고 전화를 하는 내가 그 분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듯 한 눈치였다.

저 질문을 들은 후, 나는 유학원에 잡아뒀던 상담예약을 모두 취소했다.

네 인생이야, 네가 알아서 해.

우리 엄마는 나와 우리 오빠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까지만해도 전업주부셨다. 대신 우리의 학업에 정말 모든 것을 쏟아부으셨다. 이유없이 용돈을 주시는 일은 없었지만, “엄마 공책/샤프/샤프심/문제집 살 돈이 필요해요”라는 말을 이용해서 한번도 엄마loan에서 승인이 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덕분에 나는 공부나 학업에 있어서는 정말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오히려 부르주아 수준의 교육혜택을 받으며 자랐다.

 

우리 엄마는 우리가 초등학교를 다닐 시절에 담임선생님한테 잘 보여야한다며 교실에 달을 커튼을 손수 만드셨고, 반 별로 환경미화심사가 있을 때면 다른 아주머니들과 학교에 가서 이것저것 만들어서 교실 뒷편을 꾸미고, 청소를 해주시곤 하셨다. 어렸을 땐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살았으니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는데, 엄마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 내내 선생님들의 예쁨을 한 몸에 받고 다녔었다.

 

또 매일 저녁 TV를 보는 시간, 컴퓨터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저녁에는 엄마랑 오빠랑 큰 책상에 둘러 앉아서 각자의 공부를 했었다. 자기 직전에 셋 중에 가장 집중력이 떨어지는 나는 일찍 침대에 눕곤 했는데,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고 있을 때 엄마는 굿모닝-어쩌구 하는 영어 책을 필사하시기도 하셨고, 오빠는 조용히 자기 숙제를 하고 있던 풍경이 아직도 눈 앞에 생생하다. 책을 읽다가 살짝 선잠에 들면 오빠나 엄마가 넘기는 책장소리나 사각거리는 연필소리가 ASMR처럼 귓가에 아른거렸었다. 엄마 덕분에 우리는 책상앞에 앉아서 공부하는 법을 배웠다.

 

이렇게 엄마 의존적인 유년시절이 지나고, 오빠랑 내가 중학교를 가고서부터는 엄마는 맞벌이를 시작하셨다. 자연스레 엄마가 공부를 봐주는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나는 학원을 다닐 수 있었다. 역동적인 사춘기를 맞이한 고등학교 때에는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공부를 그렇게 중요시 여기셨던 엄마는 내 성적이 나쁘다고 나무라신 적이 없었다.

 

내가 대학을 정할 때에도, 전공을 정할 때에도 엄마는 내 결정을 전적으로 존중하셨다.
“네 일이야, 네가 알아서 해.”
독일 유학을 준비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네 인생이야, 네가 알아서 해.”

 

그렇다. 아무리 우리 엄마지만 엄마도 내 인생은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 인생은 내가 오롯이 결정하고 책임져야하는 것이다.

혼자 유학을 준비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

혼자 유학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사실 나의 걱정과 고민과 불안함을 나눌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반 전체를 떠나서, 전국에 있는 내 동갑의 아이들이 모두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에 같이 이야기하면서 정보를 공유하면서 서로의 고충을 덜어줄 수 있었다.

 

또 부모님의 관심사 또한 나의 대학에 가장 집중되어있었기 때문에, 길고 긴 수험생활이 혼자하는 싸움처럼 느껴지진 않았었다. 반면 독일 유학은 주변에서 아무도 유학을 가지도 않았을 뿐더러, 독일로 가는 사람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고, 그나마 친한 호원이가 독일 유학에 관심이 있었지만, 얘한테도 독일 유학은 아직 현실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누군가가 이미 걸은 길이여서 확실한 프로토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문가로부터 나의 상황에 맞는 컨설팅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맘때쯤에는 이런 것들이 완료가 되어있어야하고, 이맘때쯤에는 어떤 것에 집중하고 있어야하고 등등.. 이러한 가이드라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할 수 가 없어서 너무 답답하고 불안했다.

 

수시로 감정이 뒤바뀌었고, 우울할 때는 정말 지구 깊숙한 곳까지 침전해서, 다 집어치우고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왕 하는 것, 제대로 하자.

독일 유학을 위해서는 슈페어콘토라는 것이 필요하다. 1000만원에 달하는 목돈을 독일은행에 넣어두고, 다달이 얼마씩 뽑아서 쓸 수 있게 하는 제도인데, 학비가 공짜인 만큼 학생들이 유학비도 없이 와서 불법체류나 불법취업을 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 이런 제도가 있는 듯 하다.

 

영국에서 돈을 탕진하고 온 나는 독일 유학 준비를 시작할 때에만 해도 그만한 돈이 없었다. 부모님의 손을 빌리는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 있었지만, 아무것도 확정 된 것이 없는 상태로 그냥 막연히 내 꿈에 천만원을 투자해달라기엔, 이제 막 노후를 즐기기 위해 시골로 귀농하신 엄마아빠한테 무리수였다.

 

그래서 나는 일단 결과를 먼저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딸내미가 대학원 입학허가서를 들고왔는데도 돈이 없어서 대학원을 못가는 꼴을 부모님이 두고 보시진 않을거라고 생각했다.그리고 준비를 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것을 보여드려야한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부담감이 의지박약인 나를 계속 움직일 수 있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뮌헨에서 사온 2018년 다이어리에 매일매일 깨알같이 새로 알아낸 정보들을 적고, 또 적어가며, 그리고 유명한 독일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인터네셔널 석사와 관련된 최근 3년이내의 모든 글들을 댓글포함해서 다 읽었다.

처음에 지원한 두 학교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떨어졌지만, 그 때 성숙하지 않았던 CV와 Motivation letter가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CV와 Motivation letter가 발전하고 성숙해가는 동안 나 스스로의 내공도 점차 쌓여갔다.

유학원을 가는 것이 나쁜 걸까?

전혀 그렇지않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들이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없다.”라는 말을 줄곧 하셨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우리는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돈을 더 내면 10시간 버스를 타야할 것을 1시간만에 비행기로 갈 수 있듯이, 유학도 혼자 6개월을 고생하느니 돈 몇십만원 내버리고 편하게 준비할 수도 있다.

 

내가 유학원이라는 옵션을 선택하지 않았던 (혹은 못했던) 이유는 그저 유학원들이 생물학 석사를 준비하는 학생을 어떻게 준비시켜야할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독일 유학원들은 대개 음악이나 미술쪽에 치중해있다.) 돈이 있고, 유학원에서 본인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준다면 마다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 시간을 차라리 독일어를 배우는 데에 더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독일 유학을 준비하면서 내가 겪어냈던 것들이 모두 하나의 ‘유학 준비’라고 생각한다. 독일에서도 영어로 된 공지사항들을 읽어야 할 것이고, 간혹 영어가 없는 사이트에서는 독일어를 구글번역기나 크롬을 이용해서 번역해서 이해해야할 것이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졸업이나 시험에 필요한 정보들은 영어로 알아들어야하고 시험도 심지어 영어로 봐야하고 취업도 영어로 해야하는데, 그런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긴 아깝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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